능력자 책 속 한 문 장

근데, 끊없는 자기 학대로 세상의 사다리 위에 올라간 녀석들이 교묘하게 말하고 있어. 우리는 꿈을 위해 청춘을 투자했습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했습니다. 지금도 내일의 꿈을 위해 오늘을 참고 있습니다. 고급 양복을 입은 녀석들이 은근한 미소로 이런 말을 해 대고 있으니,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질 것 같잖아. 말이 된다고 생각해? 실은 녀석들도 모르는 거야. 무서운 녀석들이지. 눈물 찍어 가며 그렇게 말하다 보니, 자기도 정말 그래 왔다고 믿어 버리는 거야. 자기 학살과 같은 단계를 거쳐 영혼이 죽어 버린 인간들은 겨우 허울만 남아 있어. 영혼이 죽은 껍데기를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물론 정체성 따윈 고민조차 못해. 사무실 조명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구두, 빌딩 사이를 유유하게 미끄러지는 세단, 햇빛은 은근하게 반사시키는 양복, 그게 자신이라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더욱 채찍질을 하지. 혹여나 소생할 만한 영혼이 남아 있다면, 그마저 사회적 존경과 성공이라는 묘약이 선사하는 취기에 사로잡혀 있어. 녀석들은 정말 믿고 있는 거야. 자기 학대가 아름다운 노력이라고 그러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더욱 전파하는 거지. 학생들은 더 나은 대학을 위해, 청년들은 더 나은 직장을 위해, 직장인은 더 높은 자리를 위해, 청춘들은 더 나은 배우자를 위해, 주부들은 더 넓은 집을 위해, 더욱 혹사하라고, 더욱 희생하라고. 물론, 운동선수는 연봉 인상과 메달을 위해. 나도 녀석들의 피해자였어. 물론, 녀석들의 첫 피해자는 자기 자신이지만 말이야.

최민석, 「능력자」중

말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저는 사람은 익숙한 대로 관성적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에너지가 덜 드니까. 그런데, 그 관성이 흔들릴 때가 있어요. 언제인지 아세요?"
"글쎄요."
"관성은 힘이 센데요, 그 관성을 흔들 수 있는 게 바로 감정이에요. 이성과 논리로는 관성을 바꾸기 어려워요. 하지만 전에 느껴보지 못한, 기존의 관성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전혀 색다른 감정이 나타난다면, 그때는 시스템의 근본이 바뀔 문이 열릴 수 있어요. 감정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굳게 닫힌 큰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는 있죠. 그러니 갑자기 떠오른 감정을 허투루 보면 안 돼요."

하지현, 「심야 치유 식당2」

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는 걸까요? 책 속 한 문 장

현대인의 삶에는 어느 정도 비극적인 요소가 내재해 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직장인의 피곤한 얼굴에서, 술집에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격앙된 어조로 떠드는 중년사내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린 여학생의 발걸음에서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구원을 꿈꾸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무너졌고 성공은 아득해 보이기만 합니다. 생활은 점점 더 편리해지는데도 사람들은 왜 더 외로워지는 걸까요? 그래서인지 세상엔 인생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강조하는 책들이 차고도 넘칩니다. 한편에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다른 한편에선 물질문명에 반한 정신적인 가치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화려한 영웅담과 고난을 극복한 인간승리극에 열광합니다. 또한 헤피엔딩이 예고된 달콤한 로맨스와 성공의 비결이 담긴 유명인사들의 자서전을 읽습니다.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모두가 그런 멋진 인생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소설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는 걸까요? 나는 소설이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며 부서진 꿈과 좌절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 잡았다 놓친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파탄 난 관계,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운명에 굴복하는 이야기,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고,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이야기, 암과 치질, 설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실패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이들, 아직도 부자가 될 희망에 뜰떠 있는 이들은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중략) 나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구원의 길이 보이든 안 보이든 말입니다. 만일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좋은 소설이라면 독자들은 책을 읽는 동안 불행에 빠진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천명관,「나의 삼촌 브루스 리」작가의 말 중에서

홀가분하다 책 속 한 문 장

언어분석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은 430여 개랍니다. 그것을 불쾌와 쾌(快)의 단어로 구분하면 7대 3정도의 비율이고요. 그중에서 사람들이 쾌(긍정)의 최고 상태로 꼽은 단어는, 다시 말해 쾌를 표현하는 단어 중 그 정도가 최고라고 꼽은 것은 '홀가분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의미 있는 성취나 물질적 획득 혹은 짜릿한 자극에서 비롯하는 '죽인다. 황홀해. 앗싸'같은 단어가 쾌의 최고 경지일 듯싶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이란 그와 달리 무엇이 보태진 상태가 아닌 '거추장스럽지 않고 가뿐한 상태'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는 거지요. 미처 그 사실을 알지 못해 자꾸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심리적 헛발질을 하고 있을 뿐, 당연히 홀가분한 길을 택하겠지요.

정혜신,「홀가분」중


한 해를 정리하며... 생 활 기 록 부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2011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올 한 해 잘한 일 세가지만 꼽아봤다.

첫째, 직장 옮긴 것
        직장을 옮긴 후로 업무에 대한 만족도와 성취감이 높아졌다. 권위적인 직장 상사와의 이별로 자신감도 되찾았고 업무를 통해 하루하루 성장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 내년 한해에는 나의 Potential을 늘리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할 생각이다. 이번 이직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직장을 고르는 기준의 하나(개인적인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생겼다. 

둘째: 자전거 산 것
        자전거를 산 뒤로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건강도 좋아졌고 지리도 밝아졌다. 무엇보다 한참을 달린 후 두 발을 땅에 내려 놓을 때의 짜릿함과 직접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성취감은 오직 자전거를 탔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다. 현재 나만의 코스를 개발중이며, 여건만 된다면 향후에는 자전거로 출퇴근할 생각이다. 

셋째: 바쁜 와중에도 동호회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
        졸린 눈을 비비고 새벽에 일어나 야구하러 갔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몇 경기 빠지긴 했지만 나름대로 약속을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성적도 작년에 비해 향상됐고, 수비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내년 시즌에도 같은 리그에서 뛰게될 지 아직 결정되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동호회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붙박이 1루수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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