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는 걸까요? 책 속 한 문 장

현대인의 삶에는 어느 정도 비극적인 요소가 내재해 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직장인의 피곤한 얼굴에서, 술집에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격앙된 어조로 떠드는 중년사내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린 여학생의 발걸음에서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구원을 꿈꾸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무너졌고 성공은 아득해 보이기만 합니다. 생활은 점점 더 편리해지는데도 사람들은 왜 더 외로워지는 걸까요? 그래서인지 세상엔 인생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강조하는 책들이 차고도 넘칩니다. 한편에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다른 한편에선 물질문명에 반한 정신적인 가치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화려한 영웅담과 고난을 극복한 인간승리극에 열광합니다. 또한 헤피엔딩이 예고된 달콤한 로맨스와 성공의 비결이 담긴 유명인사들의 자서전을 읽습니다.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모두가 그런 멋진 인생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소설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는 걸까요? 나는 소설이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며 부서진 꿈과 좌절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 잡았다 놓친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파탄 난 관계,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운명에 굴복하는 이야기,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고,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이야기, 암과 치질, 설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실패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이들, 아직도 부자가 될 희망에 뜰떠 있는 이들은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중략) 나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구원의 길이 보이든 안 보이든 말입니다. 만일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좋은 소설이라면 독자들은 책을 읽는 동안 불행에 빠진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천명관,「나의 삼촌 브루스 리」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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