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자 책 속 한 문 장

근데, 끊없는 자기 학대로 세상의 사다리 위에 올라간 녀석들이 교묘하게 말하고 있어. 우리는 꿈을 위해 청춘을 투자했습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했습니다. 지금도 내일의 꿈을 위해 오늘을 참고 있습니다. 고급 양복을 입은 녀석들이 은근한 미소로 이런 말을 해 대고 있으니,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질 것 같잖아. 말이 된다고 생각해? 실은 녀석들도 모르는 거야. 무서운 녀석들이지. 눈물 찍어 가며 그렇게 말하다 보니, 자기도 정말 그래 왔다고 믿어 버리는 거야. 자기 학살과 같은 단계를 거쳐 영혼이 죽어 버린 인간들은 겨우 허울만 남아 있어. 영혼이 죽은 껍데기를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물론 정체성 따윈 고민조차 못해. 사무실 조명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구두, 빌딩 사이를 유유하게 미끄러지는 세단, 햇빛은 은근하게 반사시키는 양복, 그게 자신이라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더욱 채찍질을 하지. 혹여나 소생할 만한 영혼이 남아 있다면, 그마저 사회적 존경과 성공이라는 묘약이 선사하는 취기에 사로잡혀 있어. 녀석들은 정말 믿고 있는 거야. 자기 학대가 아름다운 노력이라고 그러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더욱 전파하는 거지. 학생들은 더 나은 대학을 위해, 청년들은 더 나은 직장을 위해, 직장인은 더 높은 자리를 위해, 청춘들은 더 나은 배우자를 위해, 주부들은 더 넓은 집을 위해, 더욱 혹사하라고, 더욱 희생하라고. 물론, 운동선수는 연봉 인상과 메달을 위해. 나도 녀석들의 피해자였어. 물론, 녀석들의 첫 피해자는 자기 자신이지만 말이야.

최민석, 「능력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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